풀종다리의 노래, 손석희 아나운서의 회고록

풀종다리의 노래라는 책에 대하여

풀종다리의 노래는 요즘 가장 ‘핫한’ 언론인을 꼽히는 손꼽히는 손석희 아나운서의 책입니다. 그는 총 두 권의 책을 냈고 한 권은 공동 집필이었습니다. 즉, 이 풀종다리의 노래가 그가 혼자 쓴 유일한 책입니다. 내용을 이야기하기 전, 이 책의 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약 1,000부밖에 발행되지 않아 도서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책입니다. 정가는 6,000원인데 중고로 3~4만 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도 약 3년 전, 3만 원을 주고 중고로 구입했습니다. 원래 500부만 발행되었다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500부를 더 발행했다고 합니다.

요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손석희라는 인물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다시 발행되지 않는 한, 책의 가치는 계속 높아질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돈이 필요해 집에 있는 책을 몇 권 팔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이 책만큼은 팔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더군요. 경제적 가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책의 내용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제목이 ‘풀종다리의 노래’인 이유는?

먼저, 풀종다리는 메뚜기목 귀뚜라미 과의 곤충입니다. 그런데 책의 이름이 왜 하필 풀종다리의 노래일까요? 처음엔 그가 자신의 소시민적인 태도를 풀종다리라는 미물에 빗대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이는 부산 문화방송의 배인척 씨가 지은 단편소설의 제목입니다. 손 아나운서가 92년 가을, 파업이 끝나고 구치소에서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 책상에서 발견한 원고의 제목입니다. 배 씨가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넣어놓았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 당시 사회의 불합리함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풀종다리의 세계에 빗대어 표현했을 것입니다.

풀무치 대왕은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풀종다리를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자 풀종다리의 친구들이 그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그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슬픈 것은 30년 전의 이야기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한 공감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또다시 30년이 지난 후,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까요?

내용에 관하여

그는 서두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직업이 아나운서인 사람이 책을 냈다 해서 혹 방송가의 재미있는 뒷얘기를 기대하신 분이 있다면 이 책은 무척 실망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일상 이야기, 그리고 MBC 파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저는 그의 여러 이야기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하버드 졸업생 이야기

어느 유명한 원로배우의 아들이 하버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인이 하버드에 입학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그 당시에는 더 적었겠죠. 불 보듯 뻔하게, 각 방송사에서 원로배우 부부와 아들을 섭외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습니다.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는 선택! 토요일이 좋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 프로그램 제작진들도 그들을 섭외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대했습니다. 하나의 화젯거리는 될 수 있을지언정, 모든 시청자들에게 귀감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 땅의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과 그 부모들에겐 그들처럼 교육받거나 교육을 시킬 기회가 없습니다. 또, 있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방송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우리 교육의 현실과 그 아래 짓눌려 사는 이 땅의 아이들을 생각했다고 회고합니다.

장학퀴즈 1000회 특집과 한국 교육의 현실

그리고 장학퀴즈를 진행하며 느낀 점들을 이어서 말합니다. 장학퀴즈가 방송 천 회를 맞아 조선족 학생들을 출연시켰습니다. 그들은 그가 그 동안 만나왔던 한국 학생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정답을 맞추지 못했을 때 나오는 아쉬운 표정은 동일했습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상대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의 표현이 아니라 점수는 개의치 않고 문제의 답을 놓쳤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습니다. 그가 그 동안 만났던 학생들은 모두 우리 교육이 가진 문제점들을 극명하게 드러냈었습니다. 우승의 안정권에 들어간 학생은 아는 문제가 나와도 절대 부저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혹 틀려서 감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학생의 맞은 편 방청석에서 답을 가르쳐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학생의 오답 판정에 분개하여 방청석에서 항의하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글은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마치 최근에 쓰여진 것처럼 이질감이 전혀 없습니다. “애초부터 나는 중국이건 미국이건 다른 어느 나라의 경우와 우리의 현실을 비교할 생각은 없었다. 내겐 그럴만한 자격도 없다. 그러나 끝없는 경쟁의 과정에서 소수를 제외한 다수가 도태돼야 하고 그 도태된 아이들 중의 상당수가 사회의 그늘에 있어야 하며, 심지어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는 우리의 현실은 고쳐져야 할 것이 아닌가. 오래 걸릴 셈치고라도 이제 곧 시작해야 할 사회개혁이란 것도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남의 나라 대통령을 존경하고 남의 나라에서 공부해 성공하는 것도 말릴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누구, 그가 무슨 영웅은 아니더라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일등은 아니더라도 노력한 만큼 존중 받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의 글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경쟁과 적자생존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는 빠른 성장을 했지만, 그만큼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어렸을 때 배운 대로라면, 삶은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삶은 살아내는 것이 되었습니다.

글을 마치며, 유려한 문장의 글

지금껏 책을 읽으며 ‘문장이 유려하다’고 느낀 적이 세 번 있었습니다. 고 신영복 선생님과 김훈 작가, 그리고 손석희 아나운서의 책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글은 내용이 아닌 단어의 배열과 문장의 구조만으로도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글은 담담하게 쓰여졌지만 오히려 읽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역설적이면서도 매력적입니다. 요즘 JTBC 뉴스룸에서 그의 문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힘이 있는 말들입니다. 그의 뉴스 브리핑은 유려한 말이면서 동시에 유려한 글입니다. 그의 생각과 문장을 읽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단언컨대,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상으로 보기

해당 내용을 영상으로도 제작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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