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하워드 진의 인생 이야기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미국의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이 쓴 책입니다. 남부 흑인 운동과 베트남 반전 운동에 대한 경험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

하워드 진은 미국 근현대사의 살아 있는 증인입니다. 1922년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났고 한 때는 조선소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때 폭격수로 참전했으며 폭격 임무도 실제로 수행했습니다. 이후 흑인들만 다니던 스펠먼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그 학생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민권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어떠해야 하는지 처절하게 보여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자유의 여신상

폭격수가 말하는 ‘전쟁’

하워드 진은 2차 세계대전때 폭격수로 참전했습니다. 물론 그는 전쟁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닌 대의를 위해서 참전했었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들은 명령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도 많이 죽였습니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따위는 상관할 생각도 없는 사람들 말이죠. 이후 그는 일본의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폭격 임무를 수행한 적은 없지만, 원폭으로 인해 팔다리가 잘리고 피부가 녹아내리고 눈이 뽑힌 사람들 앞에서 전직 폭격수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후에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은 폭력에 맞서, 잔인함에 맞서 선한 대의처럼 보이는 것을 위해 수행될 수 있지만, 전쟁 자체는 폭력과 잔인함을 증폭시킬 뿐이다.” 저도군 복무를 하며 전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며 전쟁은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선한 목적을 하고 있다 해도 말이죠.

산

남부 흑인 인권 운동의 산 증인

하워드 진은 군 제대 후,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흑인만 다니는 스펠머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스스로를 ‘반항적’이라고 자주 표현했던 그의 기질은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백인이었던 그는 그동안 겪지 못했지만, 당시는 흑인들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 되었습니다. 버스, 공연장, 식당, 화장실 등 모든 곳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자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백인 전용 좌석에는 자신의 흑인 학생들을 앉히고 자신은 유색인종이 앉는 좌석에 앉고, 함께 경찰에 대항했습니다. 법정에 선 것도 여러번이고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괴한이 침입해서 총을 쏘기도 했지만, 우연히 집을 비웠을 때라 살아남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보스턴 대학에서 마지막 강의를 할 때까지 투쟁의 삶을 계속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백인 남자였고 대학 교수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행동했습니다.

그가 쓴 <미국 민중사>는 미국 내에서도 “진짜 미국 역사”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본 역사 교과서에 질린 일본인이 진짜 일본 역사를 말해주는 책을 찾는 것과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저히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의 차이가 있겠죠. 백의민족이라고 하며 우리는 항상 피해자였고 다른 나라에 피해를 준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과정 중 일어났으며, 월남전때 우리나라 군대는 인간 이하의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또, 일본 위안부와 비슷한 일도 저질렀다고 하죠.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책임만큼 우리도 그들에게 비슷한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황이 어땠든 간에 우리는 가해자였으니까요.

책

인상 깊었던 부분

역사에 ‘만약’은 없다

(191페이지) “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이제 재연할 수는 없다. 역사의 모든 일은, 일단 벌어지고 나면, 마치 정확히 그런 식으로 일어나야만 했던 것처럼 보인다. 다른 모습을 상상하긴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역사의 불확실성을, 뜻밖의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바꾸는 데 있어 인간 행동의 중요성을 확신한다.” 역사를 배우다 보면, 한 사람의 삶을, 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는 일들이 얼마나 절묘하게 일어나는지를 보게 됩니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죠. 그 일이 일어난 후이기 때문에 마치 응당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하지만, 그는 이것을 분명 바꿀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굳이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그가 살았던 삶이 그 증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이란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228페이지) “론 코빅은 자신의 책에서 베트남에서 돌아와 도널드 서덜랜드가 <자니 총을 들다>의 구절을 읊는 것을 듣고는 자신의 생각이 구체화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책이란 내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머리로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들은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때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글로 표현한 것을 보면, 내 생각이 마구마구 구체화되고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이럴 때마다 전 갑자기 두뇌회전이 빨라지곤 합니다. 마치 풀이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수학문제를 시간에 쫓겨 빠르게 풀어나갈 때처럼 머리가 회전하면서 생각들이 정리되곤 합니다. 이것을 영감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영감을 얻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책을 읽을 때, 때론 30분만에 100페이지를 읽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한 문장을 한시간동안 읽으며 곱씹을 때도 있습니다. 저에겐 이 문장이 그러했습니다. ‘책이란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384페이지) “좋지 않은 시대에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낭만주의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잔혹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공감, 희생, 용기, 우애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의 글에는 이것이 정말 잔혹한 역사를 살았던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생각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희망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맞는 말입니다. 역사에는 잔혹함도 있지만, 공감과 희생, 용기의 역사도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현재’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는 ‘행동하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 짓습니다. 어떤 거대한 유토피아적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다 해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에 도전하며 현재를 산다면, 그것 자체로 훌륭한 승리가 된다고 말합니다.

하워드 진에 대한 평가는 미국 내에서 여전히 갈립니다. 미국 내 학교에서 ‘승자의 역사’만을 배우다가 이제야 진정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매국노라고 욕하는 분들도 있죠. 만약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를 전면 부정하는 역사학자가 등장한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떻게 갈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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